"오늘도 화이팅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말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근 한 달. 그동안의 쓰라린 경험을 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세 군데에서 동시에 면접 약속이 잡혔기 때문이다. 송파동 CU, 석촌호수 송리단길 세븐일레븐, 그리고 자곡동 이마트24. 유일하게 OJT(On the Job Training)를 해봤던 GS24만 빠진 채로 골고루 잡혔다.
첫 번째 면접: 송파 CU
오전 10시, 송파동에 있는 CU에 도착했다. 지하철 역과 가까워서 지하철로 일찍 도착 했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점장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강인한 이미지의 남성이었다. 친절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지만, 내 나이를 보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이력서 가져 오셨어요?"
앗차! 이력서를 가져오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알바사이트에 간단하게 등록했으니 그것으로 되는 줄 알았다. 점장은 괜찮다고 하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네, 편의점은 처음입니다만, 사무직으로 30년 넘게 일했고, GS24에서 미리 편의점 OJT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음... 저희가 찾는 건 장기적으로 일하실 분인데..."
"걱정 마세요. 건강에 문제없고, 성실하게 오래 일할 자신 있습니다."
과연 내가 얼마나 길게 견디며 할 지 모르지만 무조건 긍정적으로 답했다. 점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을 꺼냈다.
"저희가 사실 인원이 필요하긴 한데, 한 달 후부터 근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을까요?"
"한 달 후요?" 그 말에 조금 실망했지만, 기회라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알바 면접 보러 왔어요."
점장의 눈이 반짝였다. "아, 네! 잠시만요. 저기서 좀 기다려 주세요."
내게 몇가지 더 물은 후에 간단한 면접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점포를 나오면서 가슴이 조금 무거워졌다.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아마도 나보다는 저 젊은 여자가 선택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달 후는 기다리기에도 너무 길고 불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면접은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끝났다.
두 번째 면접: 자곡동 이마트24
먼저 문방구에 가서 간편 이력서를 사서 난생 처음으로 아주 간단하게(?)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저 4년제 대학 졸업에, 회사 생활 다양하고 길게 경험하고, 군대 의무 필에 신체건강이라고 정말 형식적으로 간소하게 두 통을 작성해서 가지고 갔다. 나는 이런 이력서 양식이 있고 문방구에 판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오후 2시, 두번째 면접 장소인 자곡동의 이마트24에 도착했다. 다소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점포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지하철을 타고 수서역에서 내려서 걸어서 30분이나 걸어야 하는 꽤 먼 거리였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점장은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는데, 무척 반가워했다.
"아, 네! 어서 오세요. 사실 면접 보러 오신 분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그는 나를 가게 안쪽으로 안내했다.
"저희 가게는 24시간 운영이라 주로 주말 근무를 해 주실 분을 찾고 있어요. 주말에 일하실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사실 시간은 자유롭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바로 이번 주말부터 출근 가능 하신가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랐지만,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 가능은 합니다만..."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출퇴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거리가 꽤 되네요. 그래도 주말에만 오시면 되니까, 어떠세요?"
점장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는 토, 일 이틀만 7시간씩 14시간만 근무하시면 됩니다."
면접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출퇴근 거리와 주말만 근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일주일에 30시간 이상은 일하고 싶은데 편의점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휴수당을 추가적으로 지급해야 하고 길게 보면 퇴직금문제도 생길 수 있어 편의점당 보통 15시간 이하로 알바를 고용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주중에 일할 수 있는 곳을 1-2곳을 더 찾아서 30시간 이상을 채워야 했다.
세 번째 면접: 석촌호수 송리단길 세븐일레븐
4시경 송리단길의 세븐일레븐에 가야 하는데 이 점주는 로데오거리에도 세븐일레븐을 하나 더 경영하고 있어 로데오의 세븐일레븐으로 갔다. 이곳은 스포츠토토에 복권 등도 취급하면서 복잡하고 손님도 많았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이가 제법 들어서 점주이려니 하고 인사를 하고 면접 보러 왔다고 했더니 창고 안에서 일하던 굵은 검은 테의 안경을 쓴 마치 만화의 주인공 같이 생긴 젊은 사람이 점주라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점장은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세븐일레븐이 롯데그룹 소속이어서 나도 한때 짧게 나마 롯데그룹 금융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얘기했더니 자기도 롯데마트 소속 직원인데 1년전에 편의점을 맡아 나왔다고 하면서 편의점이야기 말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거의 30분간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독특한 사람이었고 은근히 정이 갔다. (이 점장에 대해서는 따로 한편의 글을 쓸 예정이다.)
정작 편의점 이야기는 안하고 딴 이야기만 한참 하다가 내가 물었다. 편의점 근무할 수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대뜸 이번 주말부터 야간에 일 좀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중에도 쭉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나의 편의점 경력이나 실무 경험 등은 묻지도 않고 자기가 하나 더 경영하는 송리단 세븐일레븐에 15시간에 상관없이 가급적 많이 근무해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었어요. 젊은 근무자가 횡령을 해서 자를 수밖에 없었거든요. 뒤늦게 알았는데, 돈을 허위로 취소환불로 처리하면서 빼냈어요 지속적으로."
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금방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근무시간 중에도 유튜브만 보고 있고. 저는 오히려 연세 있으신 분이 오히려 성실하게 오래 일해주실 것 같아 좋아해요."
"동감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비록 손은 늦어도 책임감 있게 주인의식 가지고 근무할 거에요.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이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죠.그리고 나는 근무시간이 15시간 넘어도 주휴수당 안 줘도 상관없어요"
그랬더니 흡족해 하면서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일하실 수 있나요? 자른 친구를 대신해서, 그 이후 주중 근무는 3월부터 새로 의논하고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지만, 기회라고 생각라고 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
결정의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을 정리해 봤다. 송파 CU는 한 달 후부터 근무 가능하고, 게다가 젊은 여성이 면접을 봐서 불안했다. 자곡동 이마트24는 주말 근무가 가능했지만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송리단길 세븐일레븐은 당장 일할 수 있고 집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면 한 정거장이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어 15시간 단위로 일할 여러 곳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송리단 세븐일레븐 한 곳에서 주중 주말 포함해서 35시간 정도 일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편의점 알바 구하기가 쉽게 풀리려니 이렇게 쉽게 풀렸다.
60대 편의점 알바생의 진짜 분투기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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